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토 카리우스 (문단 편집) == 종전, 그 후 ==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도 겨우 '''스물 셋'''의 젊은 나이였던 카리우스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진학하여 약학을 전공하고 [[약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약국을 차렸다. 전장에서 자신과 함께 했던 전차를 기리는 뜻에서 '[[http://www.tiger-apotheke.de/index.php|호랑이 약국]]'[* 현재는 대대적인 홈페이지 개편을 거친 상태로, 카리우스 생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으며 carius를 검색해도 조회되는 것이 없다.]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9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가 되어서도 계속 운영하였다고 한다. 다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2011년부터는 약국 운영자를 따로 뽑아놓고, 자신은 파트타임 근무를 했다. 전쟁 회고록으로 《진흙 속의 호랑이(원제 Tiger im Schlamm)》가 있으며, 일본의 유명 감독이자 [[밀덕후]]로도 널리 알려진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책을 바탕으로 동명의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국내에는 '진흙 속의 호랑이'란 제목으로 2012년 11월 출간되었다.[* 정식으로 광고한 것은 아니나, 워낙 유명하고 약국을 운영한 탓에 연락이 쉬웠던지라 저서를 보내면 친필 서명을 해주기도 했다. [[http://blog.naver.com/fnvmxmqkvp|#]] 카리우스에게 서명받는 방법을 국내에 알린 것은 이 사람으로, 덕분에 다른 팬들도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타 참전자들과도 직접 연락하고 서명 수집, 인터뷰 등을 하는 사람.]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독일군 참전 군인들의 회고록과 마찬가지로 1944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참여한 인물들이 영웅시되고 있는 것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정확히 말해 아주 부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들이 일선에서 싸운 장병들보다 특별히 영웅시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일선의 장병답게 생생한 전장 묘사와 전차 운용에 대한 기록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선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점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현지인들의 유대인 습격에 대해서는 수정의 밤 사건과 연관지어 조금이나마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긴 하다. 그리고 [[힘러]]의 친위대로의 전군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기도 했다.] 그의 생전엔 외국인들도 직접 독일로 날아가서 대화를 해보거나, 직업군인으로 전차장을 희망한다면 전차장에 대한 것도 물어볼 수 있었다고. || [[파일:attachment/오토 카리우스/1794405.jpg|width=100%]] || || 노년에 [[약국]]을 운영하던 모습. || 말년까지도 자신이 티거에 탑승했다는 사실에 매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으며, 1992년에 있었던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선 "[[독일 연방군]]의 [[레오파르트1]] 전차는 승무원에 대한 배려가 티거보다 떨어진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회고록의 한 챕터 제목은 '티거 찬양'이며, 서방 전차의 공격력과 장갑, 기동성의 밸런스가 티거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드러났다고 썼다.[* '소련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넘는 무기 체계를 선보였다'며 제외.] 물론 앞서 언급한 구식 큐폴라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비판한다.[* 그 때문에 자신이 죽을 뻔했으니 당연하다. 그리고 자신이 이 일을 겪었다면 다른 전차장도 마찬가지 문제에 휘말릴 가능성이 없을리는 없을터.] 그리고 자신이 초반에 탑승했던 [[LT vz. 38|38(t)]]에 대해서는 상당한 혹평을 하였다. 비록 독일군 지휘부는 해당 전차가 3호 전차보다 조금 아래라고 평하고 애용했지만 카리우스가 탑승한 시기에는 이미 일선용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데다가[* 3호 전차보다 조금 아래라는 평을 받았는데 3호 전차는 개량을 통해서 성능향상이 가능했지만 이건 그것도 안되는 물건이었다.] 2인용 포탑을 써서 전투효율이 안 좋았으므로 실제로 이런 문제를 겪은 카리우스의 입장에서는 쓴소리가 안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해당 차량에서 근무하던 도중 부상까지 입었다. 회고록에서 묘사되는 카리우스의 전쟁기는 동부전선의 최전선인만큼 무시무시한 일 투성이지만, 계속 진흙탕에 빠지는 등 비전투 사고를 일으켜서 정비병들에게 '''소비에트 연방 영웅'''이라고 불렸던 [[고문관]] 티거 전차장 헤르만 상사의 일화나[*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는 소련 최고의 칭호로 [[게오르기 주코프]], [[바실리 추이코프]], [[이반 코네프]] 같은 장성들이 수여받은 칭호였다.] 지휘력이라곤 쥐뿔도 없는데다 민간인 여자나 건드리는 무능한 상관 폰 슐러 대위에 대한 가차없는 디스 등 여러모로 군필자라면 공감하며 쓴 웃음을 지을 만한 군 생활 에피소드도 많다.~~여담으로 사병들이 카리우스를 부르는 별명은 타고 나갈 때마다 해먹는다고 '퀴벨바겐 귀신'이었다~~2013년 러시아인과의 인터뷰에서는 종전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전우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우선 나치당원들부터 혼내주는 것이 목표였단다. || [[파일:attachment/오토 카리우스/O-M.jpg|width=100%]] || || [[타미야|{{{#ffffff 타미야}}}]]제 티거1 프라모델을 들고 있는 오토 카리우스 || 오른쪽 사진에서 같이 사진 찍은 사람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의 자서전 진흙속의 호랑이를 무단도용, 각색 해서 만화로 그렸기 때문에 미야자키 입장에선 저작권 해결을 위해서 독일에서 당사자를 만났을 가능성이 높다. 오토 카리우스가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린 만화를 봤을지는 모르지만, 전쟁의 참상을 보여줬던 자서전과는 다르게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단점인 나사빠진 전쟁병기를 향한 오덕질과 뜬금없는 미소녀의 등장으로 괴작이라 평가받는다. [[월드 오브 탱크]]에 [[월드 오브 탱크/업적/단계별 훈장#s-2|이름을 딴 훈장]]이 있다. 2012년 9월에 월드 오브 탱크의 베타테스터 한 명이 이 사람의 집을 방문해 기념 사진을 찍었다. [[http://www.tankarchives.ca/2014/08/carius-interview.html|약간의 심장 질환을 빼고는 정정했다고. 3시간 조금 넘게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실제로 전 세계 각지의 밀덕들이 위와 같이 선물을 보내와서 창고에도 가득 있다고 한다. 더불어 자서전에 사인을 해달라고 많이 보내와서 힘들었다고 한다^^원 글 삭제로 다른 링크 첨부함^^ [[http://www.youtube.com/watch?v=K8GaipoG4OE|2013년 4월 4일 날짜로 약국에서 근무 중인 카리우스에게 사인을 받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2015년 1월 24일에 [[https://www.thehawkeye.com/article/20150131/NEWS/301319909|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